16th Busan Internatianal Dance Festival 2020

, 바다 위 푸른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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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부산국제무용제 -장정윤(철학박사 동아대학교무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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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49회 작성일 20-07-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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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부산국제무용제

2008.8.14

장정윤(철학박사 동아대학교무용학과 교수)

                                                       

 

환상적인 광안리 대교를 배경으로 바다 물결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모래밭의 생동감은 어느 극장에서도 감히 만들어내지 못할 극적인 긴장감과 흥분으로 광안리 해변특설무대 위의 춤추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객석을 꽉 메운 대중의 가슴을 뿌듯이 채울 수 있었다.

무용은 어렵고 잘 모르겠다는 선입견을 보편적으로 가진 일반인들에게 아무리 훌륭한 무용이더라도 그 감상을 적극적으로 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난감했는데, 부산국제무용제를 통해 쉽고 재밌게 부담 없이 공연문화를 접하고 조금이라도 무용이 그들에게 가까이서 숨 쉬게 되었다면 더 이상 기쁠 일이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무용을 통해 국가들마다의 문화적 이해는 물론 새로운 예술정보의 장을 넓히는, 열려진 공간의 축제가 바로 부산국제무용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부산국제해변무용제추진위원회(위원장/김정순 집행위원장)의 주최로 지난 3년간 개최된 부산국제해변무용제의 지향점은 부산무용의 세계화요, 세계적인 무용축제도시로서의 부산의 문화적 정체성 확보였으며, 오늘날 부산국제무용제의 단단한 기틀을 마련해준 큰 힘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내외무용인들의 열정과 100인회 등 부산관객의 후원의 힘도 크게 입어 오늘날 대표적인 세계무용축제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올해의 참가9개국 가운데 스웨덴, 인도, 나이지리아는 부산이 처음이었다. 3일간 모두 17개 단체가 춤과 생태를 주제로 나누게 되었던 공연 열기만큼이나 주변의 바다를 춤과 가까이 접한다는 것은 참가자모두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자연환경을 의식하고 자연과 일치된 호흡을 통해 삶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춤 자체가 생태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2006년도에 이어서 올해 두 번째로 부산을 방문한 코레쉬 미국현대무용단의 존재는 확고하고도 친근하다. 다양한 음악의 해석력과 무용수들의 높은 테크닉의 수준 그리고 폭발적 에너지의 사용 등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 작품들 하나하나가 우리 삶에 가깝고 쉽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다채로운 분위기와 배경을 자랑하여 이번에도 관람자의 사랑을 많이 차지한 단체로 주목된다. 다시 말해서 이들에 대한 감동의 수준과 느낌의 파악은 편안했다. 마치 보고 있으면 자신이 춤을 함께 추고 있는 듯, 보는 사람의 만족감의 극치를 자아내는 공연자로서의 전문적 자세와 명확한 전달력이 훌륭한 공연팀의 본보기로서 길이 남을 것 같다. 안무자 코레쉬(Ronen Koresh)1983년 미국의 앨빈 에일리 댄스 시어터에서 재즈댄서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각각에는 그의 재즈스타일이 서로 다른 색채로 녹아있었다. 뮤지컬에서 보는 재즈스타일의 <Looking Back>은 미국적이고 해학적인 에피소드를 편안한 음악에 맞추어 9명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표정, 에너지 그리고 기질의 변화를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다. 이보다 좀 더 무용의 역동적인 변화를 강조하여 현대무용 속에 재즈스타일이 녹아있는 <Hidden Drives>(숨겨진 조종)는 내용에 맞게 적절히 무용수 각각의 개성을 들추어내고 있었다. <Hidden Drives>는 마음의 소리를 따를 때의 두려움과 갈등을 보여주는데 마음의 소리를 찾아갈 때에 시험에 들게 되는 심리적 현상을 한 사람의 여성 무용수를 모티프로 발전시킨다. 여성 무용수 한 사람이 무대 전면부에 나와서 갈등의 독무를, 그리고 후면부의 군무 속에 합류하면서 그 보이지 않는 조종을 하는 광경을 펼치는데 한사람의 과거를 떠나보내고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발휘하면서도 혼자만의 여행을 감행하는 듯한 여성의 강한 기질을 보여준다.

 

3일 마지막으로 공연된 <오네긴>은 부산에서 쉽게 접할 수 없던 작품이었지만 죤 크랭코(슈트가르트발레단)의 작품세계에 감동하는 계기를 발레리나 강수진의 연기를 통해 가질 수 있었다. 애타고 아름다운 사랑의 스토리발레 <오네긴>은 사랑과 물리침의 두 가지 감정이 깃든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첫 장면으로 타티아나(강수진)는 편지를 손에 들고 글을 읽어내려 가는 떨리는 몸짓으로 무대 위에 등장한다. 이번 무대에서 생략된 그 이전까지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타티아나가 오네긴에게 사랑고백의 편지를 먼저 썼을 때 오네긴은 그녀의 사랑을 선택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에게 무관심과 상처를 주었었다. 그 일로부터 몇 년뒤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왕자와 결혼한 타티아나에게 이제는 오네긴이 마음의 편지를 보낸다. 이에 타티아나는 아직도 오네긴을 사랑하지만 그를 멀리 보내는 뜻으로 단순히 오른팔을 옆(a la second)으로 펼치자 오네긴이 떠나고 그 자리에 서서 타티아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이와 같은 차가운 태도와 애절함에 떨고 서있는 마지막 장면이외에도 이 날 우리가 감상한 것은 타티아나의 오네긴에 대한 치열한 사랑 그 자체, 사랑하는 마음의 뜨거움과 격렬함을 연기하는 동작들이었지만 발레리나의 치밀한 표정과 연기에서 전해지는 특별한 사랑에 무엇보다도 감동하게 되었다. 발레리나의 극적인 본능과 역동적 힘, 에로틱한 기교 및 정열 그리고 연극적인 기법까지도 요구된다는 작품으로서 <오네긴>은 알려져 있지만 작품을 이해하고 타티아나의 사랑을 자신의 몸으로 담아 그대로 읽어내는 발레리나의 치밀한 연기는 사랑보다 더한 감동으로 우리를 사로잡았다. 공중 피로엣(pirouette한 축으로 회전하기)을 하며 순간적으로 오네긴의 팔 안으로 감겨드는가 하면 발레리나의 격렬한 주테(jete, leap)로 던져진 몸이 허공에서 갈망하는 순간 적당한 위치에서 그녀를 지지해주는 오네긴의 깊은 호흡과 다정한 태도 등의 애틋한 듀엣과 아울러, 이 작품의 원숙함은 배역과 사랑 두 가지에 대한 이해의 심도뿐만 아니라 몸으로 담고 또한 오랜 훈련 뒤에 오는 경지로서 가능했다고 생각된 무대 위에서의 현실적 연기였다. 그 밖에도 명확하고 강렬하게 무용의 감정내용을 전달했다는 점 등은 부산에서 강수진 발레리나를 통해 무용과 관람자의 만남이 보다 절실하고도 고귀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축제무대의 에 연결된 서로 다른 주체덩어리들의 소통의 구도를 잠시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전체 프로그램구성(행사주체)의 취지와 선정기준, 참가단체(공연주체)생태와 춤에 대한 주제의식과 해석 그리고 관람자(감상주체)의 자발적 참여의식 등 세 가지의 주체들이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보다 효율적인 제작을 위해 충분히 부단한 소통을 서로 요구해왔는가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세 개의 주체들이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용공연 관계자로서의 공통된 이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무용의 대중적 본질(무용은 공개된 무대등의 공간에서 공공연하게 보여지고 누군가가 그때 무용을 봐줄 수 있어야 완성이 된다고 하는 무용공연예술로서 속성을 말한다.)인식이요, 대표성을 지닌 축제로서의 지역사회 문화 수준 향상의 추구이며 공연현장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즉각적인 공동체 의식의 형성이다. 이러한 소통의 확고한 토대 위에 또 다른 행사진행상의 뒷받침이 필요한 부분들도 있다. 첫째는 공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한에서의 작품설명이다. 둘째는 무용에 집중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의 여건조성이다. 셋째는 무용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작품의 제작과 공연의 유도이다. 관람자가 궁금해 하는 작품내용을 프로그램에 성실히 기재한다든지 공연 전 간략히 자연스럽게 설명함으로써 작품 감상의 폭과 관점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현지의 타 행사나 주변으로부터의 소음이 없는 무대의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고 무용의 순간적 고리를 놓치지 않도록 기술적인 무대 전환을 위한 설치와 조명기술의 확보된다면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요인에 따르면 작품의 전달내용이 명확하거나 바다와 관련지어 작품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주변 환경이나 우리 정서에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미국, 캐나다, 독일이 근접했다고 느낀다. 이외에도 국내 컨템포러리 발레 시어터 얀의 <20084일 광안리(맑음)>은 발레의 현장성을 극대화시켜 관람자의 주목을 차지하면서 작품의 배경과 분위기조성은 훌륭했는데 플롯의 전개가 진부하게 나열됨으로써 관람자의 상상력의 끈을 놓치고 만 듯한 느슨한 결말을 가져왔다. 일본과 LDP<심청가이>는 무대주변의 환경이 좋은 효과로서 작용하지 못했는데 안무자의 작품에 대한 지나친 관념의 부여가 정신적 부담감을 주면서 관객의 주의력을 간혹 놓치게 하였다. 작품을 끌고 가는 정신적인 내재적 에너지가 충만했던 작품들 이었지만 무용수와 관객사이의 의사소통을 찾아내려는 의지가 조금은 아쉬웠다.

캐나다 서든리 댄스 시어터의 <새를 위한 정원>(8/3)<Sky Event>(8/2)에 비해 무엇에 관한 춤인가가 명확했다. 자연과 인공의 대조를 남녀의 교차하고 혼흉되는 정동의 움직임을 통해 나열하는 장면들로 이어진다. 안무와 무용을 협력한 퍼거슨(David Ferguson자연 또는 뿌리의 역할)의 큰 키와 길고 편안한 신체공간적 특징은 상대적으로 작고 탄탄한 정정아(다듬어진 형식등의 역할)의 신체 움직임과 엉키고 풀리면서 대조에 의한 미적 형식원리의 극치를 달성할 수 있었다. 거의 중앙에서 벗어나지 않는 무대공간 디자인이 무용수의 신체움직임에만 집중시키는 압박감은 있었지만 자연 또는 생태의 의미를 부각시킬 수는 있었다.

오는 10월에 두 가지의 부대행사를 남겨둔 제4회 부산국제무용제(이윤자 운영위원장)8월에 이미 세계적 수준의 예술성을 인정할 수 있는 작품들을 드물지 않게 보여줄 수 있어서 무용의 인식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고 믿는다. 한편 새로운 매체와 새로운 기술로서 접근된 무용작품이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세계적 추세에서 다소 뒤처지는 점도 앞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구성원의 조직과 운영에 의한 부산국제무용제행사를 통해 부산 무용의 미래를 위한 전략과 방향설정의 계기를 새롭게 다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광안리 해변특설무대의 무용은 참가팀에게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부산 바다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 자연환경을 의식하는 계기를 가지며 다른 지방 사람들은 겪을 수 없는 경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산사람이기 때문에 받는 고귀한 선물같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숨쉬고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생태’(ecology)라고 믿고있다.

고귀한 선물을 기뻐하기 전에 무용으로서 소통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누군가의 애쓴 보람과 결실로서의 무용작품을 춤추는 사람이 신명나게 누군가의 앞에서 보여주었다고 무용으로서 소통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보기를 원하고 누군가의 삶에 가치 있는 영향력을 미치고 훌륭한 경험을 선사했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행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생산하는 예술에서 소통하는 예술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시점에 부산무용이 놓여 있다. 부산국제무용제에서는 다행히 이러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 무대에 몇몇 올려져있어서 부산무용의 현실극복(관객이 부족하다든지 무관심한 경우의 현실등)귀감이 될 수 있었다.

소통 다음으로 중요한 의미는 이런 규모있는 행사를 통해 무용에 대해 모르는 부분도 알릴 수 잇다는 것이다. 부대행사로 예정된 <예술과 과학>심포지엄이라든지 외국의 단체들 가운데 독일, 미국, 캐니다, 스웨덴 등의 레퍼토리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무용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작품들은 대개 세 개의 범주로 나누어 진다. 오락이나 연회로서의 무용이 그 첫 번째인데 이러한 무용들은 관객과 혼연일체감, 공동체의식 등의 유대를 형성해 준다. 두번째는 예술적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다. 문화적 수준과 종족적 차이 등의 장벽을 넘어서서 공감()을 형성하는 무용들을 보여준 단체들이 여기 속한다. 세 번째는 국가마다의 전통을 알리는 민속무용들이다. 여기엔 이국적 경험이라는 호감이 작용한다. 사흘동안 무대를 오른 17단체들은 위의 세가지 범주 가운데 하나 혹은 두가지에 해당한다.

 

관객은 우연한 방문으로 이루어진 관객보다는 개연성에 따라 계산된 관객이 더 많은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아무리 소중한 무대라도 관객이 지나다 들르는 자연관객이 아니라 미리부터 객석을 차지하는 분위기는 매우 다를 것이다. 관심을 가진 손님들이 극장공연 때보다 훨씬 많을 수 있는 계획된 운영이 필요하다. 따라서 객석의 환경이 쾌적하고 주의를 집중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가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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